2013년 5월 23일 목요일

솔로와 커플의 걸음걸이 : 뒤틀린 사랑학개론

프롤로그


  오늘 필자의 시야에 포착된 창밖의 행인들은 크게 두 부류이다. 솔로, 혹은 커플. 시야는 한정되어 있기에, 한 곳을 응시하면 자연스레 일정한 거리의 동일한 경로를 움직이는 각기 다른 행인들을 관찰할 수 있다. 본인의 취미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멍 때림'이라 불리는 종류의 관찰은 이따금 의도치 않은 사고의 촉발을 야기하곤 한다. 

  잠깐,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사랑은 왜 '좋은(good)' 것일까? 혹시 사랑이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필자의 직관을 풀어 쓰고자 하는 이 이야기가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음을 미리 일러둔다. 평소 이상주의자 혹은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한 필자 본인 역시 오늘은 조금 불편함을 느꼈으니까.

Ⅰ. 솔로와 커플의 걸음걸이


  솔로의 걸음과 커플의 걸음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우선, 솔로는 혼자, 그저 열심히 걷는다. 여기서 '열심히'는 솔로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수사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잠시 뒤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반면, 커플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혹은 어깨동무를 하거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서로 몸을 기대어 걷는다. 또한 솔로는 주로 정면을 바라보며 상대적으로 빠르게 걷는다. 이에 반해, 커플은 서로를 얼굴, 하늘, 땅 등을 둘러보며 비교적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혹자는 그런 게 뭐 대단한 관찰이냐며 비웃을 법한, 생각해 보면 참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멍을 때리는 필자에게 행인들의 걸음걸이는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분절적인 동작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찰이 되었다.

  먼저 솔로의 걸음걸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독자 본인이 혼자 걷는 것을 떠올려 보아도 괜찮다. 딱 한 걸음만, 가령 오른 발을 아주 천천히 한 발 내딛어보자. 그러면 자연히 왼 발은 다음 걸음을 위해 공중에 떠 있게 되는데, 이 경우 몸은 자연히 오른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러한 동작을 아주 천천히 수행한다고 상상해보면, 기울어지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온 힘을 집중하고 있는 오른 다리에 벌써 쥐가 날지도 모르겠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당신은 재빨리 공중에 있는 왼 발을 지면에 내딛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왼 발이 땅에 닿으면? 방향만 바뀌었을 뿐 다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서둘러 오른 발을 내딛어야 하며, 이러한 동작들을 반복하게 된다. 즉, 솔로는 한 걸음 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온 신경과 근육들이 몸이 기울어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일종의 반작용처럼 힘을 작용시킨다. 즉, 우리 몸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세로로 반을 나누는 중심축으로부터, 한 걸음 뗄 때마다 좌우로 기울어지는 몸을 스스로 다시 중심축으로 끌어오려 애쓰며 걷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솔로가 앞을 보고, 빠르게, 그리고 열심히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번엔 커플의 걸음걸이를 살펴보자. 아마 솔로의 걸음걸이와 비교해서 생각하면 비교가 쉽게 될 것이다. 앞서 필자가 제시했던 커플들의 걷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왼 쪽엔 여성, 오른 쪽엔 남성이 서로의 몸을 기대어 걷고 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커플은 걸을 때 솔로에 비해 반만 힘을 쓰면 된다. 중심축으로부터 튕겨나가는 자신의 몸을 부여잡을 필요 없이, 여성은 오른쪽으로, 남성은 왼쪽으로 기울여 균형을 맞추면 된다. 커플의 걸음걸이에 있어 중심축은 두 개인 사이에, 바꿔 말하면 개인의 관점에서 외부에 존재하게 된다. 즉, 서로 합의된 균형축을 임의로 설정하고, 그것에 의지하여 걸음으로써 개인의 피로를 더는 것이 바로 커플들의 걸음 속에 숨겨진 의미이다. 커플들이 여유롭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Ⅱ. 사랑의 본질과 속성


  지금까지 솔로와 커플들의 걸음걸이에 대해 거창하게 이야기 한 것은, 걷기 운동에 숨겨진 물리적 법칙에 대해 설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바로 사랑으로 상징되는 남녀 간의 관계를 비유하고자 함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은 본질적으로 좋거나 (good) 아름답다(beautiful)기보다는 '이로운 (helpful or beneficial)' 것이다. 그리고 그 이로움에 대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솔로와 커플들의 걸음에 대한 비교를 통해 쉽게 유추해낼 수 있다. 개인은 자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흔들리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가는 위태로운 존재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 일생의 여정은 위험하고, 불안하고, 상당한 피로를 수반한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역사적으로 개인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무언가를 창조함으로써 발전을 이룩했다. 우리가 동시대에 사랑이라 부르는 가치 혹은 개념 또한 인간의 생존에 이로운 창조물에 다름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로운 기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착색시킨 개념이 바로 '선(good, 善)'이나 '아름다움(beauty)'이다.

  한 편, 커플들의 걸음걸이가 가지는 특징들을 통해 사랑의 속성을 유추해낼 수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두 개인 간의 힘의 균형이다. 커플들은 어딘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데, 의도한 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균형이란 50:50이라는 절대적인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커플이 왼쪽으로 가고자 한다면, 오른 편에 있는 사람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 반대로 커플이 오른쪽으로 가고자 한다면 왼 편에 있는 사람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 만약 두 개인의 힘이 동등한 채로 힘겨루기가 지속된다면, 그 커플은 영원히 직진뿐이 할 수가 없다. 즉, 양자가 합의한 방향으로 가는 과정의 길목마다 적합한 중심을 찾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사랑에 있어 힘의 균형이다.

  또 다른 사랑의 중요한 속성으로는 두 개인 간의 템포의 균형을 들 수 있다. 커플이 서로의 몸을 맞대고 기대서 걸어갈 수 있는 것은 각자 한 걸음씩 내딛는 속도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만약 커플이 원하는 방향으로 보다 빨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의 걸음이 빨라져야 한다. 또 보다 천천히 여유롭게 나아가려면, 두 사람 모두 걸음의 템포를 늦춰야만 그것이 가능하다.

  마지막 사랑의 중요한 속성은 커플이 형성하는 중심축의 균형이다. 앞서 잠깐 설명했듯이, 커플이 걸을 때 생기는 중심축은 각 개인의 외부에 존재하게 되는데, 각 커플이 만들어내는 중심축과 몸과의 기울기는 제각기 다르다. 즉, 어떤 커플은 거의 몸을 기울이지 않고 중심축과 수평으로 맞닿아 걷는가 하면, 어떤 커플은 서로의 몸을 중심축에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르게 기울여 기대고 걷는다. 이 때, 커플들이 걸을 때 형성되는 중심축은 지면과 수직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는 곧 두 사람이 중심축과 만들어내는 각도가 일치함을 이야기한다.

  특히 중심축의 균형이라는 속성에서는 사랑이 이로움을 위한 것임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 이유는 개인에게 균형의 대상이 결국 상대방이 아니라 중심축이라는 인위적인 합의점으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중심축과 몸이 이루는 기울기는 사랑의 깊이 혹은 강도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로움이라는 사랑의 본질이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들로 착색되는 정도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즉, 몸이 중심축으로부터 기울어지는 정도가 심할수록 본래의 이로움이라는 목적이 개인들에게 점차 가치들로 인식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세 가지 균형들은 사랑을 이로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속성으로서, 개인들로 하여금 그것을 유지하고 지속하도록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Ⅲ. 이별


  힘, 템포, 그리고 중심축의 균형이라는 중요한 사랑의 속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별이란 쉽게 말해 이러한 균형이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균형이 깨지는 이유란 자질구레한 것들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사랑이 개인에게 더 이상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별이라는 균형의 해체에는 필연적으로 최초의 균형을 깨는 행위와 그 주체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균형이 깨지면 균형에 의지해 걷고 있던 다른 사람은 넘어지게 된다. 흔히 이별의 과정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표현이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에 기인하는 것이다. 특히 개인이 중심축에 기대고 있던 기울기가 클수록 더 세게 넘어진다는 점은, 다시 말해 이로움이라는 목적을 잊고 사랑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했을수록 이별의 상처가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별에도 상처의 최소저지선이 존재한다. 이는 이로움을 위해 존재하게 된 사랑의 필연적 속성, 그 중에서도 중심축 균형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 말인즉슨, 이별로 인해 해체된 균형의 중심축이 적어도 내 자신의 중심축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가질 수 있는 개인의 균형은 항상 유보적인 형태로 유지시켜두고, 이별을 잠재적으로 잉태하는 사랑에 있어 해체가 가능한 중심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둔 것이다. 아무리 큰 이별의 상처를 받았더라도,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시 개인이 본인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가치로 착색된 환상이 이로움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완전히 압도해 넘어진 뒤에 일어나지 못하는 예외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것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또 하나 이별에 있어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균형을 깨트린 사람 역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균형은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기대어 만들어내는 복잡한 역학관계로 구성되며, 이러한 균형은 이로움이라는 강력한 목적으로부터 상당한 관성을 지니게 된다. 즉, 이러한 균형의 관성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균형과는 다른 힘, 템포, 그리고 중심축에의 기울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로움을 위한 사랑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 역시 이로움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Ⅳ. 짝사랑


  이별이 균형을 해체하는 것이라면, 이와는 반대로 사랑의 시작은 균형을 창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균형의 창조는 역시 이로움이라는 굳건한 사랑의 본질적인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사랑의 시작은 앞서 이야기한 이별의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 균형의 창조에도 역시 두 개인 간의 최초의 접점을 발생시키는 행위와 그 주체가 존재한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개인은 각자의 중심축에 맞추어 삶에 있어 각기 다른 힘과, 템포, 그리고 기울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즉, 균형을 위해서는 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삶의 무늬가 어우러지기 위한 계기가 필요한데, 이러한 사랑의 시작 역시 이별과 같이 경험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서로 다른 두 개인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중심축으로 수렴하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힘, 템포, 그리고 기울기에 어느 정도 맞춰가는 경우이다. 이 때, 후자가 우리가 흔히 짝사랑이라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균형의 창조를 우해 짝사랑을 행하는 주체는 균형의 관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별에 있어서 균형을 깨뜨리는 사람과 비슷하다. 짝사랑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개인의 균형을 벗어나 타인의 중심축에 맞춘다는 점에서 역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짝사랑이 힘든 것은 개인의 균형을 깰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짝사랑이 아픈 이유는 개인의 균형이 깨지면서 야기되는 일종의 후유증 때문인 것이다.

에필로그


  사랑은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다. 마치 커플의 걸음걸이와도 같이, 사랑이 갖는 특성들은 교묘하게 우리의 이로움을 위해 존재한다. 사랑이 개인의 이기적이라 표현할 수 있는 이로움을 위한 것임은 불편하지만 사랑이 갖는 진실이다.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또한, 그것이 우리 개인의 생존에 이로운 것임을 전제로 하며,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사랑의 궁극적인 본질이 아름다움이 아닌 이로움이라고 해서, 사랑이 사랑이 아니게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생존에의 이로움을 추구하는 행위는 인간이 가장 본능적으로 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사랑을 위해 개인은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짝사랑도, 연인과 함께하는 현재의 사랑도, 그리고 이별도 모두 어렵다. 그것은 개인이 생존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치열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랑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그것의 존재와 가치를 회의하기보다,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굳건한 원천으로 기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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